2011년은 애플에 잊을 수 없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올해 애플은 정유회사 엑슨모빌을 제치고 세계 최대기업으로 부상했다. 쫓겨났던 잡스가 몰락해 가던 회사로 복귀한 지 14년만의 일이다. 같은 해 잡스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2011년은 애플이 사상 최고 히트상품을 내놓은 때이기도 하다. 바로 아이폰4S다. 이 새 아이폰은 판매 개시 후 사흘 만에 400만대 이상을 팔아치우는 신기록을 세웠다. 아이폰4S는 전문가들을 가장 버름하게 만든 상품이기도 하다. 새 아이폰이 공개됐을 때 온갖 전문가, 분석가, 전망가들은 언론, 블로그, 트위터를 통해 분노에 가까운 실망감을 토해낸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매 개시 후 폭발적 반응이 나타나자, 머쓱해진 그들은 '유작효과'라며 '죽은 잡스가 제품을 살렸다'고 둘러댔다. 정말 제품은 달라진 게 없는데 사람들이 죽은 잡스를 위해 '애도구매'를 해 주는 걸까? 하지만 별로 새로울 게 없다던 그 전문가들이 낯을 바꾸어 새 운영체제(iOS5)와 음성명령 체계인 '시리(Siri)'를 침 튀겨가며 칭찬하기 시작한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반엘리트적 기술대중주의
전문가들의 '헛발질'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애플이 제품을 공개하고, 전문가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대중이 열광하고, 이윽고 전문가들도 따라서 열광하는 현상은 이미 수년간 반복되어 온 일이다. <뉴욕타임스>의 기술칼럼니스트 데이빗 포그는 이 양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1) 애플이 신제품을 공개한다.
2) 블로거와 업계 전문가들은 그 제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조목조목 분석한다.
3) 판매에 들어가고, 소비자들은 못 사서 환장한다. 모든 회사가 애플을 모방한 제품을 내놓는다.
애플 제품에 대해 소위 '전문가'들과 대중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이런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간극의 원인을 살피는 것은 애플의 철학과 전략을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애플에게 기술은 경외의 대상이 아닌 활용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즉 첨단 기술을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 애플의 기술철학인 것이다.
애플의 이런 '기술대중주의'가 전문가 집단과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술적 지식을 갖춘 소위 '테키'들은 기술의 쓰임새보다 기술 자체를 추앙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 엘리트주의' 시각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쉬운 제품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아이패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애들 장난감'이라고 조롱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애들 장난감'이란 평가는 애플에 모욕은커녕 더없는 찬사였다. 실제로 가끔 말조차 못 배운 아이들이 아이패드를 익숙하게 가지고 노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첨단 기기를 코흘리개도 쓸 수 있게 만드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패드나 아이폰처럼 무한대로 기능이 확장되는 단말기를 사용설명서 하나 없이 내놓을 수 있던 비결은 단순함과 직관에 대한 애플의 (거의 강박에 가까운) 집착 때문이다.
완결성에 대한 집착과 폐쇄주의
제품이 단순하려면 그 자체로 완결된 기능과 형태를 지녀야 한다. 복잡하게 연결하거나 확장하지 않고도 고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야 한다. 뭔가 더하고 변형해서 성능이 나아진다면 제품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고, 제품이 완전하다면 더하고 변형하는 것은 제품의 완결성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어떤 식으로든 제품 자체에 개입하려고 애쓰는 해커들의 시도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다. 애플 제품을 물리적으로 뜯어고치는 행위는 물론, 다른 기기들을 연결해 '확장'하려는 행위조차 달가워하지 않았다. 다른 회사 제품과 달리 주변기기 연결용 단자 제공에 인색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이패드에는 그 흔한 유에스비 포트 하나 달려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중대한 결함'을 '아이패드가 실패할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못 사서 환장하는' 물건이 되었을 뿐 아니라, 전문가 자신들의 애장품이 되었다. 지금처럼 민망한 상황이었으나, 잡스가 살아 있던 탓에 '유작효과' 핑계를 댈 수는 없었다. 조용히 애플매장 앞에 줄을 서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10월 24일 공개된 잡스 전기를 쓴 아이작슨은 <타임> 잡스 추모 특별판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해커와 고급 사용자들은 기성제품을 이리저리 고치고 바꿔 자신의 물건으로 만들기 일쑤다. 잡스는 이런 짓이 소비자들에게 완전한 사용 환경을 제공하는 데 위협이 된다고 보았다. 해커이자 동업자였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생각이 달랐다. 워즈니악은 애플II에 슬롯 8개를 달아주자고 했다. 사용자들이 원하면 여분의 기판과 주변기기를 연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잡스는 내키지 않았으나, 마지못해 동의했다. 하지만 몇 년 후 매킨토시를 내놓을 때 잡스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여분의 슬롯이나 포트를 모두 없애는 것은 물론, 특별 제작한 나사를 써서 소비자들이 아예 컴퓨터를 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 월터 아이작슨, "미국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타임> 특집호 2011년 10월 17일 35쪽.
잡스의 이런 접근은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시장 확대를 어렵게 했고, 급기야 애플을 파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달리 다른 컴퓨터 제조업체에 애플의 소프트웨어를 쓰지 못하게 한 탓이다. 애플의 소프트웨어는 애플의 하드웨어를 통해서만 기능과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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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애플화', 애플의 '구글화'
잡스는 파멸 직전의 애플로 돌아와 많은 사람들이 '폐쇄형'이라고 부르는 방식을 강화했고, 그렇게 해서 애플의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대의 회사로 키워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위기'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더 어울리는 어휘가 되었고, 애플의 모델은 아마존 같은 인터넷 업체는 물론 '개방형'의 상징이 된 구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구글은 지난 8월 모바일 제조업체 모토롤라를 인수했다. 이를 둘러싸고 '재매각용'이니 '특허권 확보'니 여러 분석이 있었으나, 구글의 의도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사이의 '빈틈'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전처럼 소프트웨어를 자사가 만들고 하드웨어를 타사에 맡기는 방식으로는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구글은 애플처럼 자신의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를 가장 잘 구현해 줄 하드웨어를 직접 생산할 것이다. 물론 구글은 한동안 삼성 등 하드웨어 업체들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것이고, 안드로이드도 오랜 기간 '개방형'으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구글은 자사 단말기에 특화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낼 것이고, 같은 안드로이드라도 서비스에 최적화된 단말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이처럼 구글은 점차 애플을 닮아갈 것이고, 애플은 구글(그리고 한국 포털)의 영역을 침식해 갈 것이다. 새 아이폰에 장착된 음성명령 시스템 '시리(Siri)'는 애플이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하드웨어 업체와 소프트웨어 업체, 온라인 서비스와 오프라인서비스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한국 기업의 위기는 이제부터다
한국 언론에 따르면, 아이폰4S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허탈'과 '안도'라고 한다. 기대했던 소비자는 실망하고 국내 경쟁 업체는 '보잘것없는' 새 아이폰을 보고 안심했다는 뜻일 것이다. 이미 국내 소비자는 아이폰4S의 파괴력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으니 특별히 위로의 말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언론과 업체들에는 해 줄 말이 있다.
한국 기업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게다가 이 위기는 제조업체뿐 아니라 포털 업체에까지 확산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사에서 다루기로 하고, '아이폰4S'를 둘러싼 애플의 전략을 분석해 보자.
많은 이들이 '아이폰5'를 기대하다가 실망했다고 했다. 애플이 제품을 공개하기 전까지 무수한 추측이 난무했다. 완전히 투명한 형태일 것이라는 이야기, (맥북 에어처럼) '물방울 모양'이라는 설, 심지어 홈버튼이 긴 타원형이며, 이걸 '터치패드'로 쓰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터치폰에 터치패드?).
결국 이 모든 추측은 '하드웨어'에 대한 것이었다. 정말 아이폰이 그런 외형으로 나왔다면 사람들이 열광했을까? 설사 그랬다 해도, 기록적 매출을 올려 준 아이폰4 구매자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잘 드러나지 않는 변화'가 덜 위험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최근작이 나오기 전까지 아이폰4는 잘 팔리고 있었다.
고성능 칩에 개선된 카메라, 업데이트된 운영체제에 완전히 새로운 음성명령 시스템. 기존 제품 사용자 가운데 '내면'의 성능에 관심이 있다면 새 제품을 구입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 아이폰4를 쓰면서 차기작을 기대하면 된다. 기존 재고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판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기존 소비자를 실망시키지 않으면서도 새 고객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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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인격체가 되다
이제 제품을 살펴보자. 아이폰4S의 가장 큰 변화는 '인격체'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점일 것이다(전화기를 뜻하는 아이'폰'이라는 이름이 격에 맞게 않게 느껴질 정도다).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제품에 '인성'을 부여하려는 노력은 애플의 창업 이래 계속되어온 노력이다. 애플은 음성명령체계 '시리'를 장착한 새 제품을 내놓으면서 '개인비서(personal assistant)'라고 불렀다.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시리'가 채택한 음성명령 체계가 기존의 음성인식과는 다른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음성인식이 목소리를 인식해서 문자로 바꿔 주거나 간단한 장치를 조작하는 것이라면, 음성명령은 인공지능을 통해 자연어를 인식하고 이에 대해 자연어로 반응하는 상호작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아이폰4S'는 사용자와 대화할 능력을 갖춘 최초의 개인 단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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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음성으로 읽어주고, 주인의 답변을 받아 적어 문자로 보내주는 것은 기본이다. '아직도 비가 오냐'고 물으면, '이제는 비가 오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해당 지역의 일기예보를 보여주고, '1인치가 몇 센티미터냐'고 물으면 단위를 계산해서 말해준다. '30분 후에 깨워달라'고 말하면 그러겠다고 답하며 타이머를 작동시킨다.
'시리'는 할 일 없는 사용자들의 실없는 질문에도 성실히 답변해 준다. '넌 여자냐?'는 질문에 '나는 정해진 성별이 없다'고 답변하고, 결혼하자고 하면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게 좋겠다'고 정중하게 거절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청혼 후 "사용계약에 결혼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어떤 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달라'는 부탁에는 '두 대의 아이폰이 술집에 갔는데...그 다음엔 잊어버렸어요'라고 답했다.
사용자가 늘면서 완벽하지 않은 음성명령체계의 허점과 문제점도 드러나겠지만, 그 전까지 애플은 막대한 매출을 올리며 '시리에게 말 걸기'라는 새로운 유희문화를 탄생시킬 것이다. 머잖아 유튜브가 '시리의 우스운 답변 시리즈'로 도배되리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시리는 이 수많은 사용자들이 경험하는 '즐거운 오류'와 더불어 좀 더 성숙한 인격체로 진화할 것이다.
전화기, 인생을 논하다
한 사용자가 시리에게 '삶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철학적 질문에 시리는 여러 답변을 준비해 두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패러디해 '여러 증거를 종합해 보면 초콜릿인 것 같다'고 답변하기도 하고, '답변 대신 긴 희곡을 쓰겠다'라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희곡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무엘 베케트를 읽은 게 틀림없다.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답변은 이러했다.
"남에게 친절해지세요. 지방을 가급적 적게 섭취하고, 가끔씩 좋은 책을 찾아 읽고,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과도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도록 노력하세요. 상대가 무엇을 믿든, 어떤 국적을 지니고 있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아이폰4S와 '시리'는 한국 기업을 괴롭히며 여러 교훈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눈앞의 돈벌이에 눈이 멀어 인문학, 예술, 기초과학을 내던진 어리석음의 결과를 목격하게 해 줄 것이다. 길게 말할 것 없이, 한국은 예술대학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퇴출을 거론하며 이것을 '선진화'라고 부르는 곳이다. 예술대와 경영대가 다른 이유로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리가 한국 사회에 줄 가장 큰 교훈은 부끄러움일 것이다. 이 사회는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도 답하는 이 질문에 말이다.
'무의미한 기계적 답변을 확대해석하지 말라'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답변을 내놓는 기기는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 사람, 회사, 공동체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제 경쟁은 더 이상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다. 삶, 의미, 가치,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가 더욱 어두워 보이는 까닭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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